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시마 나기사 (문단 편집) == 상세 == [[오카야마]]현 [[타마노시]] 출신. [[쇼치쿠]] 입사 5년째인 27살 때 만든 청춘 잔혹 이야기는 자유분방한 일본 젊은이들의 실태를 다룬 작품으로 "일본 영화계의 최전방, [[누벨바그]]의 기수"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쇼치쿠와 불화를 일으킨 후, [[아트 시어터 길드]]([[ATG]])라는 제작사로 이적했다. 이곳에서 수많은 명작들을 연출해 일본 인디 영화에 큰 전환점을 마련했다. 대표작은 《[[감각의 제국]]》[* 1930년대 실제로 일어났던 '아베 사다 사건'을 다룬 영화. [[퀸시 존스]]가 이 영화를 보고 노래 〈사랑의 싸움(Ai no Corrida)〉을 만들었다고 한다.]과 《[[교사형]]》, 《[[전장의 크리스마스]]》,《일본의 밤과 안개》가 유명하다. 그 후로 뭔가 흑막이 있어보이면, '''[[안개]]''' 운운하는 게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마츠모토 세이초]]의 저서 [[일본의 검은 안개]]도 영향을 주었다.] 주로 [[섹슈얼리티|성]]과 [[정치]]를 화두로 담는다. 그의 영화는 2차 대전 이후 청산되지 않은 [[제국주의]]의 잔재로 인해 발생하는 일본의 사회적 부조리를 다루거나, [[군국주의]]의 왜곡된 남성성을 묘사한다. 대표작인 《감각의 제국》은 [[실제 연기|그 과격한 묘사 때문에]] 꽤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감각의 제국》 이후 해외에서 상당히 주목을 받아 《열정의 제국》은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피아니스트 [[사카모토 류이치]]의 대표곡으로 유명한 <[[전장의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Mr.Lawrence)> 역시 오시마 감독의 대표작. 이 영화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이 영화에 사카모토와 더불어 [[데이비드 보위]], [[톰 콘티]], [[기타노 다케시]] 등이 출연. 빠방한 출연진이다.[* 물론 촬영 당시엔 셋 모두 배우로서의 경력은 미비했던 수준이었던 게 사실이다.] 유럽 영화계와 협업한 감각의 제국을 기점으로 작품 세계가 달라지는 감독인데, 전반적으로 감각의 제국 이전 일본을 기반으로 작업한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대중적으로는 후기작이 잘 알려졌지만, 아무래도 전기랑 달리 독기가 빠졌다는 평가가 대세. 실제로 영화사 해산 이후 경색되어가는 일본 영화 제작 환경에 실망했는지, 후기엔 해외 합작으로 활동하는 과작 감독이 되버린다. 맥스 내 사랑은 아예 프랑스에서 만들었을 정도. 12년만에 [[쇼치쿠]]랑 만든 《[[고하토]]》 이후 반신 불수에 언어 장애까지 겹쳐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상태였고, 13여 년간 투병생활 끝에 2013년 [[1월 15일]]에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의 병원에서 [[폐렴]]으로 별세했다. 향년 81세. 정치적인 입장은 [[좌익]]으로, '우리들은 피해자([[일본의 피해자 행세]])가 아니다. 가해자다. 가해자, 범죄자의 입장에서 왜 이런 짓을 저질렀는가.' 하는 질문을 추구했다. 그 원인에는 [[빈곤]], 가난과 시대적 병리가 있었다는 해석을 내리고 있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도 어릴 적에 태평양 전쟁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 장남은 경영학자이며, 차남은 영화 감독이라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